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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지수혁 일병 추모 위해 '마라톤 훈련' 장소 찾아 똑같은 거리 걷기 행사
사단장,m.2 슬롯 뜻'영천대첩' 승전일 기념한다며 별도의 '마라톤 훈련' 기획·지시
"우리 아들의 죽음이 다른 누군가의 아들을 살리는 이유가 될 수 있도록"


고 지수혁 일병(상병 추서)을 추모하기 위해 걷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유족 제공〉
고 지수혁 일병(상병 추서)을 추모하기 위해 걷기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유족 제공〉
오늘(3일) 오전 8시 47분,무료 3d 슬롯26명이 경기도 포천천에 모여 약 8.2㎞를 함께 걸었습니다.

이들이 걷기 전에 세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누가 빨리 걷는지 겨루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목표 지점까지 가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고 기온 31도를 찍은 지난해 9월 5일,70%가 넘는 습도 속에서 부대 마라톤 훈련에 참여했다가 열사병으로 숨진 고 지수혁 일병(상병 추서)을 추모하기 위해,지 일병이 뛰었던 그 길을 다시 걷는 행사였습니다.

고 지수혁 일병(상병 추서) 〈유족 제공〉
고 지수혁 일병(상병 추서) 〈유족 제공〉
행사엔 지 일병의 어머니와 아버지,지난 2022년 강원도 인제 12사단 최전방 GOP에서 집단 괴롭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상현 이병의 부모님,인터넷 게임 중독 예방지침지난 2015년 서울 구파발 검문소에서 총기 사고로 숨진 고 박세원 상경의 어머니가 참석했습니다.

군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님들의 모임인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무사 귀환 부모연대(아말다말)' 회원들과 지 일병을 추모하는 일반 시민들도 함께했습니다.

오늘 포천천의 기온은 20도를 넘지 않았고 습도도 60% 아래로 쾌적했지만 이들의 맨 앞과 뒤 그리고 중간에 안전요원이 배치됐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참가자들의 컨디션을 확인했고,언제든 힘들면 멈출 수 있다고 공지하면서 "중간에 멈추는 건 잘못이 아니"라고 당부했습니다.

물을 수시로 마시고,모자나 양산을 쓰라고 권했습니다.

이런 원칙을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1년여 전 지 일병이 쓰러진 마라톤 훈련은 기존에 해오던 훈련이 아니라 이수득 당시 육군 8사단장이 6·25 전쟁 영천대첩 승리를 기념하자면서 추가로 기획한 훈련이었습니다.

단지 '승전일'인 9월 13일을 기념하자는 이유로 간부 체력검정 기준인 3㎞의 3배가 넘는 9.13㎞를 뛰도록 하면서 부대별로 참가율과 완주율에 포상을 내걸었습니다.

당시 입대 4개월 차 막내 취사병이던 지 일병은 훈련 당일에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오전 7시까지 아침 식사 준비와 정리 작업을 한 뒤 곧바로 뛰러 나갔습니다.

지 일병은 평소 새벽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오전 10시 반부터는 점심을,오후 4시부터는 저녁을 준비했습니다.막내라 잠들기 전까지 청소도 도맡았습니다.

취사병의 특성상 평소에도 일반 병사들보다 체력을 관리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당일에도 새벽에 일어나 컨디션을 관리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지 일병이 참여한 마라톤 훈련 당일,군의관은 비번이었습니다.

폭염 속에 병사들이 완주 압박을 받으며 뛰었지만,부대는 구급차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지 일병이 결승점을 1㎞ 남짓 앞두고 갑자기 쓰려졌을 때,제대로 된 응급 처치는 함께 마라톤 훈련에 참여했던 간호 장교가 뒤늦게 뛰어온 뒤에야 시작됐습니다.

군은 지 일병을 응급 장비가 없는 군 코란도 차량에 실어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상태는 심각해진 뒤였습니다.

닷새 뒤 지 일병은 열사병에 의한 장기 손상 등으로 숨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걷기 행사는 모든 것을,그날과 정반대로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고 지수혁 일병(상병 추서) 추모식 〈유족 제공〉
고 지수혁 일병(상병 추서) 추모식 〈유족 제공〉

지 일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마지막으로 쓰러진 곳까지 걸은 뒤 "엄마는 이 길을 꼭 한 번은 걸어봐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길을 두 발로 직접 걸어보지 않고는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면서 "네가 살아있었다면 맞았을 전역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무사히 군복을 벗고 엄마 품으로 돌아올 날을 너무나 당연하게 기다렸는데,정작 그 날이 되어도 돌아올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군은 지 일병이 숨진 뒤 '명확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처음 수사한 군은 "부대 관계자들의 과실이 인정된다"면서도 영관급 1명,위관급 1명 등 지휘관 2명만 경찰로 이첩했습니다.

그러나 최초 마라톤 훈련을 기획하고 지시를 하달한 이수득 사단장은 입건되지 않았고,이 사실이 JTBC 보도(2025년 12월 31일)로 알려져 논란이 됐습니다.

결국 유가족이 직접 이 사단장 등을 경찰에 고소했고,경찰은 육군과 달리 이 사단장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당시 경찰은 "위험성 평가를 시행하고,관리 감독을 해야 할 의무가 군 규정에 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은 점이 드러나 송치했다"고 이 사단장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사단장은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뒤에도 자리를 지켰습니다.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 보겠다던 육군은 수사 결과가 나와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난 8월 8사단 소속 부사관 1명이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된 뒤에야 육군은 "부대 지휘와 관리에 문제가 있다"면서 이 사단장을 직무 배제했습니다.

2014년 윤 일병 사건 때도,인천 카지노2016년 홍 일병 사망 사건 때도,2021년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2023년 채 상병 순직 사건 등 사망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군은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지 일병이 숨졌을 때도,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 일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뛰었던 그 길을 걸은 뒤 "우리 아들의 죽음이 다른 누군가의 아들을 살리는 이유가 될 수 있도록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하겠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지 일병을 생각하면서 모인 26명은 각자의 체력과 컨디션에 따라 지 일병이 쓰러졌던 곳까지 모두가 무사히 걸어와 헌화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급한 임무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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